2023년 1월 초 윗세오름 풍경
윗세오름을 등반하기 위해 어리목에서 출발했다.
이날 제주도의 날씨가 공항 쪽은 약 10도 가까이 되어서 따뜻할 것이라 예상했는데.. 어리목 입구에 오니 영하 -6도를 가리키고 있었다. 어리목이 해발고도 970m 정도가 된다고 추운 듯했다.
어리목 입구. 벌써 눈이 등산로 빼고는 수북이 쌓여있다. 눈이 많이 쌓여있기 때문에 꼭 아이젠을 착용해야 한다. 아니면 미끄러워서 절대 못 올라간다.
우리의 목적지는 윗세오름. 약 1400m 정도 되기 때문에 400~500m 정도를 등반한다.
등산로 초입인데도 이미 흙을 보기가 어렵다. 대략 잡아 30cm 이상은 쌓인 듯하다. 사람들이 지나다니며 다져놓은 눈길을 따라가야 한다. 조금만 옆으로 벗어나도 발이 푹푹 빠지기 때문에.. 조금만 다른 곳으로 발을 내디디면 넘어진다.(나도 몇 번 넘어졌다..)
초입에 계곡을 건너는 다리가 있는데 계곡이 이미 겨울왕국. 하지만 이쪽은 새발의 피였다.
고도가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눈이 많아진다. 바닥이 아니라 나무에!
아래쪽에선 나무에는 눈이 없었는데 점점 나무가 눈사람(?)이 되어간다. 눈의 깊이도 점점 더 깊어 보이는 게, 군데군데 발이 들어가 눈이 푹 꺼진 곳이 보인다. 50cm는 파져 있는 것 같았다.
원래는 계단이었을 곳이 눈으로 쌓여있다 보니 경사가 더 가파르게 느껴진다. 아이젠을 푹푹 밟아 가면서 천천히 올라갔다.
이쯤 되면 경치구경이고 뭐고 땅보고(눈보고) 올라가기 바쁘다.
나무가 우거지고 가파른 경사가 끝나는 1200m~1300m쯤 오르게 되면 완만한 평지가 시작된다. 주변에 침엽수가 드문드문 보이는 등산로가 이어진다. 여기부터 바람이 피부에 직접적으로 느껴지기 시작한다. 이전까지는 나무가 바람을 어느 정도 막아주고 있었다면 여기서부터는 바람을 막아줄 나무가 많이 않고 키도 작다. 따라서 모자나 고글이 필수이다.
내가 올라간 날이 바람이 더 심했을 것 같다. 하늘을 보면 햇빛이 들지 않을 정도로 자욱한 안개, 구름, 그리고 눈보라가 몰아치고 있다.
올라갈수록 점점 눈보라가 심해지는 것이 보일지 모르겠다. 20m쯤 앞에 걸어가는 사람의 실루엣도 잘 보이지 않는다. 등산로 표시로 박혀있는 양 옆의 가이드 선도 눈 속에 거의 파묻혔다. 거의 60cm 에서 최대 1m까지 쌓인 거라고 예상이 된다. 나무는 이미 눈으로 덮여있는지 오래되어 보인다. 바람의 방향이 한쪽으로만 불어서 그런지 눈이 가로로 쌓여있는 것도 보인다. 이 추운 날씨를 견뎌야 하다니..
이렇게 바람이 불고 가시거리가 짧으면 앞사람 혹은 등산로 혹은 발자국을 잘 따라가야 한다. 길 표시가 제대로 안 보여서 중간중간 다른 길로 빠지면 그대로 눈에 발이 푹푹 들어가는 경험을 할 것이다.(옷이 젖는 것은 덤..)
한라산 중턱에 올라 경치를 제주도의 경치를, 바다를 보면서 등산하려고 했던 처음 생각은 이미 온데간데없다. 눈보라를 뚫고 윗세오름을 향해 목적지에 도달해야 한다는 마음만이 남아있다.
그나마 다행인지 가끔 중간에 해가 구름, 눈보라를 뚫고 한 번씩 비춘다. 바람이 강해서 잠시나마 넓은 한라산 중턱과 오름을 볼 수 있었다. 해만 떠있으면 이렇게 가시거리가 좋았는데..
탁 트인 눈산을 멍하니 바라보다 해가 지면 다시 땅을 보고 올라야 한다.
어리목에서 출발한 지 2시간 15분 만에 윗세오름에 도착했다. 비닐 덮고 컵라면과 간식을 먹는 사람들이 보인다. 나는 간단한 간식밖에 안 챙겨가서 아쉽지만 허기만 달래고 왔는데.. 라면국물이 절실히 생각나는 순간이었다. 라면과 보온병을 다 챙겨올 자신이 없어 안 가져왔다. 여유가 된다면 꼭 챙겨 와서 윗세라면을 먹어보길 바란다.
윗세오름
내려가기 직전에 또 해가 반짝했다. 눈으로 덮인 한라산과 흩날리는 구름에 눈이 즐겁다. 등산하는 내내 해가 떴으면 더 좋았을 것 같다.
윗세오름에서 20분 정도 사진을 찍고 간식을 먹으며 쉬다가 하산을 시작했다. 더 있고 싶었지만, 몸이 점점 식으면서 추워졌지 때문에 빠르게 하산했다.
내려올 때는 맞바람을 맞아서 눈을 뜨기가 힘들다. 싸라기눈이 바람을 타고 날아와 얼굴과 눈을 때리는데 모자로 바람을 막지 않으면 눈을 뜰 수가 없다. 내려오는 것을 1시간 10분 정도 걸렸다. 코스가 여러 개인데 나는 다시 어리목 입구도 돌아왔다. 내려와서 택시가 잘 안 잡히니까 주의하길 바란다.
윗세오름 중요 포인트
- 겨울 한라산 아이젠 필수. 신발도 아이젠을 착용했을 때 발가락이 눌리지 않는 단단한 신발.
- 옷은 입고 벗기 편하게 여러 겹으로. 올라가면 금방 땀이 나고 덥다.
- 물과 간식은 필수. 라면은 선택(짐이 많아지면 또 힘들기 때문에)
- 모자 필수. 내려올 때 맞바람을 막아줄 것이 필요하다. 고글을 쓰는 사람도 있다.
- 성인 남성 기준 등반 2시간 30분 하산 1시간 30분 정도 잡으면 넉넉하다.
- 어리목은 12시까지 입산가능(계절별로 다를 수 있다.)
- 그리고 절대 안전하고 무리하지 않는 등산!
눈산이 주는 매력이 있는 것 같다. 온 사방이 하얗게 변해있는 눈 속을 지나다 보면 다른 세상에 와있는 것 같은 느낌도 든다. 물론 눈보라가 칠 때는 안 좋은 의미로 다른 세상..
겨울에(1월 경) 윗세오름에 오르려는 사람에게 참고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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